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용산 박물관에서 여주 절터로 돌아간다 — 이관 시점은 미정
요약
국립중앙박물관과 국가유산청, 여주시가 2026년 9월 9일 보물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을 본래 자리인 사적 여주 고달사지로 옮기기로 했다고 함께 발표했습니다. 보존처리와 종합보고서 발간, 현장 정비를 마친 뒤 옮기므로 실제 이관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석등은 당분간 용산 박물관 야외 석조물정원에 있습니다.
본문
핵심 요약
- 2026년 9월 9일 국립중앙박물관·국가유산청·여주시가 보물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을 원래 절터인 사적 여주 고달사지로 옮기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 아직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보존처리와 학술조사 종합보고서 발간, 고달사지 현장 정비(관람로·안내판)를 마친 뒤 이관하며 날짜는 미정입니다.
- 석등은 지금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석조물정원에 있고, 이관 뒤에는 여주시가 관리합니다.
- 국가지정 쌍사자 석등은 전국에 5기(국보 2·보물 3)뿐이며, 이 석등은 사자가 서 있지 않고 웅크려 앉은 유일한 자세로 1963년 보물이 됐습니다.
- 1958년 절터를 떠나 종로 예식장 뒤뜰, 경복궁 경회루 앞을 거쳐 2003년 용산 박물관에 온 석등의 마지막 이동입니다.
보물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이 경기도 여주 고달사지, 곧 본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지금까지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에서 관람객을 맞아 온 석등입니다. 2026년 9월 9일 국립중앙박물관이 현지 이관 준비작업을 시작했다고 알렸고, 국가유산청도 같은 날 여주시와 손잡고 '제자리 찾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발표는 **'옮기기로 결정했고 절차를 시작했다'**는 내용이며, 석등은 아직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결정됐나
-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 — 야외정원에 전시 중인 석등을 여주 고달사지로 옮기기 위한 현지 이관 준비작업 시작. 2026년 4월 국가유산위원회 건축분과의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 보존과학부에서 보존처리 진행 중.
- 국가유산청(청장 허민) — 국립중앙박물관·여주시와 협의해 이전을 결정. 2026년 8월 국가유산위원회(건축문화유산분과) 심의 완료.
- 여주시(시장 이충우) — 이관 뒤 관리 주체. 관람객이 유산의 가치와 이동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고달사지에 관람로와 안내판을 설치할 계획.
남은 절차는 세 단계입니다. 보존처리와 분석 결과를 담은 종합보고서 발간, 고달사지 현장 정비, 그리고 석등 이전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구체적인 이관 시점을 보존처리와 보고서 발간 시점을 고려해 관계기관 협의로 정하겠다고만 밝혔고, 어느 단계의 완료일도 공식 자료에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의 현지 이관은 문화유산의 맥락을 찾는 뜻깊은 일이지만, 동시에 박물관의 보호와 관리에서 벗어나 현장의 다양한 환경 변화에 마주함을 의미한다.”

어떤 석등인가 — 앉은 사자가 받치는 고려의 등
석등은 사찰에서 부처의 빛을 밝히던 등입니다. 이 석등은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국가유산포털 기준 높이는 2.43m입니다. 보통 석등의 아래받침돌이 놓일 자리에 사자 두 마리를 앉혔고, 그 위로 구름무늬 받침돌과 연꽃무늬 받침돌, 불을 밝히는 화사석이 차례로 쌓여 있습니다.

왜 귀한가 — 국가지정 쌍사자 석등은 전국에 5기
국가유산포털에서 '쌍사자'로 지정유산을 검색하면 석등은 다섯 건이 나옵니다. 국보 2기, 보물 3기입니다. 그런데 고달사지 석등은 이 다섯 가운데서도 자세가 다릅니다. 다른 쌍사자 석등의 사자는 앞발을 들어 윗받침돌을 직접 떠받치는 선 자세인데, 이 석등의 사자는 앞발을 내민 채 웅크려 앉아 있습니다. 이 파격이 고려의 창의적인 조형미로 평가받아 1963년 보물 지정으로 이어졌다고 국가유산청은 설명합니다.
국가지정 쌍사자 석등 5기 (국가유산포털 검색 기준)
- 국보
-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충북)
- 국보
-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전남)
- 보물
-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 이 글의 석등, 여주 이관 추진 중
- 보물
-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 (경남)
- 보물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 (경기)


1958년부터 시작된 이동 경로
절터에 쓰러져 있던 이 석등이 다시 세상에 알려진 것은 마을 주민이 수습해 보관하면서부터입니다. 그 뒤의 이동 경로는 국가유산청 보도자료 각주에 정리돼 있어 아래 표로 옮겼습니다. 언론은 1958년을 기준으로 '68년 만의 귀향'이라 표현했지만, 두 기관 보도자료 원문에는 그 숫자가 없으므로 이 글은 '1958년 절터를 떠난 뒤'라고만 적습니다.
석등의 이동 경로 (국가유산청 보도자료 각주)
- 발견 당시
- 여주 고달사지에 넘어진 채 방치 → 마을 주민이 수습해 보관
- 1958년
- 서울 종로구 동원예식장 후원으로 이동
- 1959년
- 경복궁 경회루 앞으로 옮겨 보관
- 2003년
-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짐 → 이후 야외 석조물정원에서 전시
- 2026년~
- 여주 고달사지로 이전 추진 — 시점 미정
위 유리건판 사진에서 석등 윗부분이 비어 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석등은 오랫동안 지붕돌이 사라져 화사석까지만 남아 있었는데,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2000년 경기도 기전매장문화연구원의 고달사지 발굴조사에서 지붕돌이 출토됐습니다. 절터에 남아 있던 조각이 서울의 본체와 다시 만난 셈이고, 반대로 여주 현장에 남은 것은 석등을 받치던 기초시설뿐입니다. 석등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자는 요구가 오래 이어진 배경입니다.

돌아갈 곳, 사적 여주 고달사지에는 무엇이 있나
석등이 돌아갈 곳은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의 사적 「여주 고달사지」입니다. 국가유산포털에서 '고달사지'로 검색되는 지정유산은 일곱 건으로, 석등이 돌아가면 한 절터에서 국보와 보물을 한꺼번에 볼 수 있게 됩니다. 아래 사진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입니다.
'고달사지'로 검색되는 지정유산 7건 (국가유산포털)
- 국보
- 여주 고달사지 승탑
- 보물
-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 보물
-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
- 보물
- 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
- 보물
-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 지금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여주 이전 추진
- 사적
- 여주 고달사지
-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 여주 고달사지 석조(石槽)




남은 것이 석조물만은 아닙니다. 연화문수막새를 비롯한 기와류가 고달사지에서 출토됐고, '고달사(高達寺)'라는 절 이름이 새겨진 기와 조각도 전합니다. 전설로 내려오던 절 이름이 흙으로 구워진 물증으로 남은 셈입니다.


아무 유물이나 돌려보내지 않는다 — 다섯 가지 선결 조건
'제자리 찾기'가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박물관 밖으로 나간 석조물은 비와 눈, 온도 변화, 대기오염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석조문화유산의 현지 이관에 앞서 다음 다섯 조건을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고달사지는 이미 사적으로 지정돼 있어 안전한 공개와 관리가 가능하다고 판단됐고, 지금 진행 중인 보존처리와 과학적 조사는 다섯째 조건을 채우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제시한 현지 이관 선결 조건
- 1
- 출토지가 확실하고, 원위치가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관리될 것
- 2
- 관리 주체가 국가 또는 지자체로 명확할 것
- 3
- 전시 및 관리 안전이 담보될 것
- 4
- 본래 용도와 기능에 맞추어 원형 그대로 이전할 것
- 5
- 과학적 정밀조사가 선행될 것
지금은 어디서 볼 수 있나
- 실물은 아직 서울에 있습니다.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관의 석조물정원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 여주 고달사지는 지금도 갈 수 있는 사적입니다. 국보 승탑과 보물 원종대사탑·탑비·석조대좌를 현장에서 볼 수 있지만 쌍사자 석등은 아직 그곳에 없습니다.
- 이관 시점과 여주 현장 관람 개시일은 어느 공식 자료에도 없습니다. 후속 발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가유산청 보도자료 게시판에서 확인하세요.
보존처리 중이라 관람 상태가 다를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에서 보존처리가 진행 중이라고 밝힌 만큼, 방문 시점에 석등이 가려져 있거나 자리를 옮겼을 수 있습니다. 석등을 보러 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방문 전 박물관(02-2077-9000)에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 Q.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은 언제 여주로 옮겨지나요?
-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밝힌 것은 보존처리 진행 상황과 종합보고서 발간 시점 등을 보아 가며 관계기관과 협의해 정하겠다는 방침뿐이고, 여주 현장 관람이 언제 시작되는지도 공식 자료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 Q. 여주 고달사지에 지금 가면 쌍사자 석등이 있나요?
- 없습니다. 석등은 아직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석조물정원에 서 있고, 지금은 보존처리를 받는 중입니다. 고달사지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석등을 받치던 기초시설뿐입니다.
- Q. 쌍사자 석등은 전국에 몇 개나 있나요?
- 국가유산포털에서 '쌍사자'로 검색되는 국가지정 석등은 5기입니다. 국보는 보은 법주사와 광양 중흥산성 2기, 보물은 여주 고달사지, 합천 영암사지,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3기입니다.
- Q. 고달사지 석등의 사자는 왜 앉아 있나요?
- 고달사지 석등만의 특징입니다. 다른 쌍사자 석등의 사자는 대개 서서 앞발로 윗받침돌을 떠받치는데, 이 석등의 사자는 앞발을 내민 채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이 점을 고려의 창의적인 조형미로 평가했고, 그렇게 1963년 보물 지정에 이르렀다고 설명합니다.
- Q. 석등 이관 뒤에는 누가 관리하나요?
- 여주시입니다. 석등이 옮겨 가기 전에 국가유산청과 여주시가 고달사지에 관람로와 안내판을 두는 현장 정비를 먼저 마칠 계획입니다.
편집자 코멘트 · 강신욱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을 산책하며 이 석등을 봐 온 분, 여주 고달사지 답사를 계획하는 분을 위해 두 기관 보도자료와 국가유산포털 지정 정보를 대조해 정리했습니다. 박물관 관람 시간과 야외정원 위치는 국립중앙박물관 방문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출처
- 원문
- 국가유산청 보도자료 「국가유산청,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제자리 찾기 추진」 (2026-09-09)
- 국가유산포털 — 보물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지정일·소재지·설명)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Open API — '쌍사자' 지정유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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