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황룡사 사리장엄구 특별전 — 10월 11일까지, 무료
종료된 행사입니다. 기관 관람 안내는 계속 유효합니다. 경주박물관 관람 안내 · 진행 중인 행사·전시
요약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황룡사지 발굴 50주년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가 2026년 10월 11일(일)까지 열립니다. 9층 목탑 심초석 사리공에서 나온 사리장엄구 117건 322점을 무료·예약 없이 볼 수 있고, 872년 사리함에서 새로 읽어 낸 장인 4명의 이름이 이번 전시의 핵심입니다.
본문
핵심 요약
- 기간은 2026년 6월 12일(금)부터 10월 11일(일)까지 121일간이며, 장소는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입니다.
- 관람료는 무료이고 사전 예약도 필요 없습니다. 10:00~18:00 개관, 10월까지 매주 토요일은 20:00까지 엽니다.
- 출품은 금동 사리함 등 117건 322점(보물 2건)으로,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 사리공과 그 아래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 872년 경문왕이 목탑을 고치며 만든 금동 사리함을 보존처리하다 뚜껑 안쪽과 바닥판 조각에서 김충·연장·청선·연창 네 사람의 이름을 새로 읽어 냈습니다.
- 무료 전시해설은 매일 13:00와 16:00 두 차례, 특별전시관 안내소 앞에서 시작합니다(30명 이내).
국립경주박물관이 황룡사지 발굴조사 50주년을 기념해 여는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_皇龍奉佛(황룡봉불)」**이 2026년 10월 11일(일) 막을 내립니다. 6월 12일 개막 이후 넉 달 동안 이어진 이 전시는, 지금은 터만 남은 황룡사 9층 목탑의 중심 기둥 아래에 모셔져 있던 사리장엄구를 창건 당시 것과 872년 중수 때 것으로 나누어 비교해 볼 수 있게 짠 자리입니다. 이번 글은 남은 열흘 안에 다녀올 분을 위해 무엇을 보면 되는지, 어떤 사실이 새로 밝혀졌는지를 공식 자료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9층 목탑은 사라졌는데 무엇이 남아 전시되나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짓기 시작한 왕실 사찰이고, 9층 목탑은 선덕여왕 때인 645년 승려 자장의 건의로 세워진 신라 최대의 목조 건축이었습니다. 고려 때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탄 뒤 다시 서지 못했고, 지금 경주 구황동의 절터에는 건물 초석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목탑의 중심 기둥을 받치던 심초석은 제자리에 있고, 그 돌 안에는 부처의 사리를 모시던 네모난 구멍인 사리공이 뚫려 있습니다. 이 사리공 안에서 나온 사리기·사리함과, 1976년부터 시작된 황룡사지 발굴조사에서 심초석 아래 기단 속에서 확인된 유리구슬·곱은옥·방울·청동 그릇 같은 공양물이 이번 전시의 뼈대입니다.


박물관이 이번에 강조하는 대목은 사리공이 단순한 보관용 구멍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보존처리 결과 사리공의 벽면과 바닥, 돌 뚜껑 안쪽까지 금동 판으로 덮여 있었고, 사리공 쪽을 향한 면만 도금돼 있었습니다. 사리를 담는 그릇만이 아니라 사리를 모신 공간 전체를 하나의 큰 사리함처럼 꾸몄다는 뜻입니다. 사방 벽면에 세워졌던 금동 판 네 장에는 신장상이 둘씩 모두 여덟 구 새겨져 있는데, 파손된 채 발견돼 오랫동안 원래 위치를 몰랐던 것을 이번에 복원하면서 남쪽 가운데를 바라보도록 배치돼 있었음을 알아냈습니다.
872년 경문왕은 왜 사리함에 글을 새겼나
목탑은 세워진 뒤 여러 차례 고쳐 지어졌는데, 그중 872년 경문왕의 중수가 특별합니다. 경문왕은 사리공을 열어 기존 사리장엄을 확인한 뒤 사리 100매와 법사리 2종을 더 넣고, 금동 사리함의 안팎에 900여 자에 이르는 기록을 새겼습니다. 이것이 **「황룡사 찰주본기」**로, 목탑을 세운 배경과 중수 과정, 참여한 사람들, 새로 봉안한 사리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보통 탑의 내력은 돌이나 금속판에 따로 새겨 탑지(塔誌)로 남기는데, 황룡사에서는 사리를 모신 사리함 자체에 새겼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 사리함은 보물로 지정돼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입니다.

새로 찾은 이름 넷은 누구인가
찰주본기가 새겨진 사리함에는 모두 61명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관료 20명과 승려 41명으로, 소속과 역할까지 적혀 있어 872년 중수가 왕실만의 일이 아니라 수많은 기술자가 동원된 국가 사업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글자를 새긴 사람으로 총혜·소연전·연전 세 이름은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번 보존처리에서는 여기에 더해 사리함의 뚜껑 안쪽에서 김충(金忠)·연장(連長)·청선(淸宣), 바닥판으로 추정되는 조각에서 연창(連昌)이라는 이름이 새로 확인됐습니다. 옆판에 글자를 새긴 사람들과는 구분되는 위치여서, 박물관은 이들을 옆판·바닥판·뚜껑의 무늬를 조각한 장인으로 추정합니다.
- 이미 알려진 새긴 이: 총혜, 소연전, 연전
- 뚜껑 안쪽에서 새로 확인: 김충(金忠), 연장(連長), 청선(淸宣)
- 바닥판 추정 조각에서 새로 확인: 연창(連昌)
“중요한 점은 사리함 제작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실제 사리함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사리함의 왼쪽 문과 오른쪽 문에 새겨진 금강역사상과 신장상을 견주어 보면 선의 굵기와 깊이, 꽃무늬 처리, 무기 표현이 서로 다릅니다. 여러 장인이 부분을 나누어 맡았다는 흔적으로, 새로 읽어 낸 이름들과 함께 보면 천 년 전 작업장의 분업이 그려집니다. 전시장에서 사리함 문 양쪽을 나란히 비교해 보시길 권합니다.
'9층탑의 9가지 이야기', 무엇이 새로 밝혀졌나
박물관은 최근 보존처리와 과학 조사로 알아낸 내용을 아홉 가지 이야기로 묶어 전시 전체에 배치했습니다. 위에서 다룬 사리공 장엄, 신장상 금동 판의 위치 복원, 찰주본기, 새 이름 넷, 장인마다 다른 조각 수법 외에 눈여겨볼 것은 다음 네 가지입니다.
- 심초석 아래 기단 속은 세 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아래층은 터를 다지는 진단 의례, 위 두 층은 대규모 공양의 흔적이어서 탑을 세우는 동안 공양 의식이 여러 차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 찰주본기에 유리 사리병과 함께 있었다고 적힌 '금은고좌(金銀高座)'가 무엇인지 오래 논쟁이었는데, 연꽃 모양 받침을 분석해 위아래 꽃잎은 금, 가운데 기둥은 은으로 만든 것을 확인해 이 받침이 금은고좌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 팔각당형 사리기의 이중 몸체 사이에 '제법인연생(諸法因緣生)' 구절을 새긴 은제 판 두 점이 들어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찰주본기에 경문왕이 추가로 넣었다고 기록된 법사리 2종이 실물로 확인된 셈입니다.
- '중화 3년(883)'이라는 중국 연호가 새겨진 사리기는 원래 다른 절의 탑에 봉안됐던 것으로 보이는데, 도굴됐다 되찾은 몸체와 사리공 조사에서 나온 뚜껑이 한 벌임을 확인해 872년 중수 이후 황룡사로 옮겨 봉안됐음을 알아냈습니다.
전시는 어떻게 구성되나
동선은 시간 순입니다. 창건기 사리장엄구에서 시작해 경문왕의 재봉안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황룡사 이후 다른 절로 퍼진 9세기 사리장엄으로 끝납니다. 3부에서는 전(傳)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의 납석제 사리호(보물)와 금동 사리함(863년)을 처음으로 함께 전시하고, 합천 해인사 길상탑의 탑지석과 소탑(895년), 다라니 관련 자료를 통해 사리와 법사리·다라니·소탑을 함께 봉안하는 새로운 형식이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특별전 3부 구성
- 1부
- 목탑 창건 당시 봉안된 사리장엄구 — 사리 신앙과 호국의 상징으로서 9층 목탑
- 2부
- 872년 경문왕의 목탑 중수와 사리 재봉안 — 새 사리·법사리·공양물이 더해지는 과정
- 3부
- 황룡사 이후 여러 사찰로 퍼진 사리장엄 — 전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사리호·사리함, 해인사 길상탑 탑지석과 소탑
발굴 50년, 왜 지금 기념하나
황룡사 사리장엄구는 순탄하게 세상에 나온 유물이 아닙니다. 1960년대에 심초석 사리공이 도굴 피해를 입은 뒤 사리공 수습 조사가 이루어졌고, 1976년부터는 절터 전체를 대상으로 한 발굴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그 발굴에서 심초석 아래 기단 속 수천 점의 공양물이 나왔습니다. 올해가 그 발굴조사 50주년이고, 도굴로 흩어졌던 사리기 몸체와 조사 때 수습한 뚜껑이 한 벌이라는 것까지 이번에 확인됐으니, 반세기 동안의 조사가 한 전시로 정리된 셈입니다.

관람 전에 확인할 것
- 종료일은 10월 11일(일)입니다. 마지막 주말(10월 10~11일)은 붐빌 수 있으니 평일 오후나 토요일 저녁을 노려 보세요. 10월까지 매주 토요일은 20:00까지 엽니다.
- 전시해설은 매일 13:00와 16:00, 각 50분입니다. 특별전시관 안내소 앞에서 시작하며 30명 이내 선착순이고, 자원봉사자 사정에 따라 예고 없이 바뀔 수 있습니다. 명문과 보존처리 성과는 해설을 들으면 이해가 훨씬 빠릅니다.
- 관람료는 무료, 예약도 없습니다. 상설전시관과 같은 부지이니 신라역사관·신라미술관과 묶어 반나절 일정으로 잡으면 됩니다.
- 전시를 본 뒤 황룡사지(경주시 구황동)에 들러 목탑 터의 심초석을 직접 보면 사리공의 크기와 탑의 규모가 실감 납니다. 박물관에서 가까워 같은 날 함께 돌기 좋습니다.
- 전시 기간 중 탐구 꾸러미 프로그램 '봉인해제! 금동 사리함의 비밀', 답사 프로그램 '우리 가족 황룡사 나들이', '큐레이터와의 대화', '신라학 강좌'가 운영됐습니다. 남은 회차는 박물관 누리집 교육·행사 안내에서 확인하세요.
출품 점수 표기가 출처마다 다릅니다
박물관 보도자료(2026.6.11.)는 117건 322점(보물 2건)으로, 같은 박물관의 전시 상세 페이지(국문·영문)는 '약 390점'으로 적고 있습니다. 집계 단위 차이로 보이지만 공식 설명은 없어, 이 글은 보도자료 수치를 따랐습니다. 또 목탑 건립 연도는 박물관 자료가 645년, 일부 소장품 설명은 646년으로 표기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 Q. 국립경주박물관 황룡사 특별전은 언제까지 하나요?
- 2026년 10월 11일(일)까지입니다. 6월 12일에 개막해 121일간 열리며, 관람 시간은 10:00~18:00이고 10월까지 매주 토요일은 20:00까지 연장 개관합니다.
- Q. 황룡사 사리장엄구 특별전 관람료와 예약은요?
- 무료이고 사전 예약이 필요 없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보도자료가 '사전 예약 없이 무료 관람'이라고 밝혔고, 박물관의 무료 특별전 원칙과도 같습니다.
- Q. 이번 전시에서 새로 밝혀진 것은 무엇인가요?
- 872년 경문왕 중수 때 만든 금동 사리함의 뚜껑 안쪽과 바닥판 조각에서 김충·연장·청선·연창 네 사람의 이름을 새로 읽어 냈습니다. 사리함에 남은 이름은 모두 61명(관료 20명, 승려 41명)입니다. 이 밖에 사리공 전체가 금동 판으로 장엄돼 있었다는 점, 팔각당형 사리기 안의 법사리 은판, '중화 3년' 사리기의 몸체와 뚜껑이 한 벌이라는 점 등 아홉 가지 성과를 소개합니다.
- Q. 황룡사 9층 목탑을 872년에 고쳐 지은 왕은 누구인가요?
- 경문왕입니다. 경문왕은 중수하면서 사리 100매와 법사리 2종을 더 봉안하고, 그 내력을 900여 자의 「황룡사 찰주본기」로 금동 사리함에 새겼습니다.
- Q. 황룡사 특별전 전시해설은 몇 시에 있나요?
- 매일 두 차례, 13:00~13:50과 16:00~16:50입니다. 특별전시관 안내소 앞에 시간 맞춰 가면 되고, 무료이며 30명 이내로 제한됩니다.
편집자 코멘트 · 강신욱
종료를 열흘 남긴 시점에 경주 일정을 잡는 분, 그리고 '황룡사 9층 목탑'을 교과서 밖에서 처음 실물로 만나려는 분을 위해 정리했습니다. 관람 시간·휴관일·가는 길은 국립경주박물관 방문 안내에 따로 두었습니다.
출처
- 원문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 안내
- 국립경주박물관 전시해설 안내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황룡사 9층 목탑 찰주본기」 (신수 2323)
- 국가유산포털 「경주 황룡사지」 (사적)
- 서울신문 「1300년전 신라인의 염원을 마주하다」 (2026.6.11.)
- 보도자료 원문
위 출처를 바탕으로 네군데이 직접 확인해 정리했습니다. 원문 문장을 옮기지 않으며, 수치와 일정은 둘 이상의 자료로 확인한 것만 적습니다.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정정을 요청해 주세요.
